라틴어 수업 _ 한동일 읽는 人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
이 책의 뒤 표지에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품격 있는 응답"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는 홍보를 위한 자화자찬의 글귀가 아니다. 이 책은 진정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꽉 찬 느낌을 주는 책을 만난 지가. 

한동일 신부는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법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며 선제적 조건으로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동일 신부는 2010년 한국에 돌아와 잠시 쉬면서 서강대에서 라틴어 강의를 한다는 것이 
2016년까지 이어졌으며, 그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라틴어 수업' 책을 쓰게 된다. 

'라틴어 수업'을 읽다보면 공부에 대한 욕심이 우선 생긴다. 
동사 한개의 변형이 160개에 달할 정도로 복잡한 언어인 라틴어를 공부하다 보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공부 습관을 익히게 되는데, 
공부의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한번쯤 치열하게 그러니까 머리 터지도록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발 담그고 나선 분명 후회하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그 복잡한 언어를 익히고 매일 습관적으로 규칙적으로 공부를 해 온 한동일 신부에게 묘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매일 일정 양 만큼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렇지만 그 시간과 노력이 주는 결과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렇게 쌓이 내공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공은 '라틴어 수업'의 곳곳에서 발휘되고 있다. 

좋은 글귀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때마다 해당 페이지를 접곤 하는데 
읽다보니 5~6페이지에 한번 꼴로 종이가 접혀져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짧은 간격으로 밑줄들이 쫙쫙 그어져 있다. 
이게 정말 얼마만인가. 책을 읽면서 밑줄을 긋고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필사를 한 것이. 

한동일 신부는 섣부른 위로나 충고는 건네지 않는다. 지식을 자랑하거나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 자만심도 없다. 
문장 또한 화려한 기교나 수사 없이 담백하다. 
낯간지러운 문장 혹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같은 문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단한 내공으로 성찰과 사색의 힘을 보여준다. 
정말 깊이 있게 공부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정말 제대로 자신을 닦고 채워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품격이라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책이다. 
그래서 '라틴어 수업'을 읽는 내내 위로를 받았다. 
평소 가졌더 고민들, 늘 내 발목을 잡는 '자신없음'과 '낮은 자존감', 
나이 마흔이 가까워지도록 인생의 목표가 없어 지금도 방황하는 매일의 날들. 
이로 인해 위축된 나를 '라틴어 수업'은 참 많이 보다듬어 주었다. 

한동일 신부는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실패의 경험에 대해 지나치게 좌절하고 비관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실패한 나'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자기 자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일종의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한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쉽게 좌절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겁니다. 우리는 실패했을 때 또다른 '나'의 여집합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여집합들이 잘해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죠. 이렇게 자신이 가진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나아가는 것이 겸손한 자세가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겸손한 척, 착한 척 하느라 매번 진이 다 빠진 내게 '겸손'의 진짜 의미를 알려준다. 
작은 실패에도 호들갑 떨며 세상 무너진 것처럼 행동하는 내게 그것이야 말로 자만이라고 알려준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고, 시도를 하더라도 매 순간 걱정으로 가득찬 내게 오바 좀 그만 하라고 알려준다. 
겸손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실은 자만심 넘치던 내게 이보다 적절한 충고과 위로가 어디 있겠나 싶다. 

Here and Now에 대한 한동일 신부의 이야기도 와닿는다.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는 단어만큼 인간 존재와 함께 실존하는 단어는 드뭅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키기 위해 '여기 그리고 지금'을 의미하는 hic et nunc라는 부사를 사용하여 
인간 실존의 절박함을 표현하기도 하죠"
내가 숨쉬고 있는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 매순간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기회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이 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머리에 새기고 싶은, 마음에 담고 싶은 글귀가 참 많은 책이다. 
읽는 내내 내공이 탄탄한 사람을 마주했을 때처럼 벅차고 설렜다. 
한동일 신부처럼 단단하게 여문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들면서도 
하루 24시간 중 단 1초도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동일 신부가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멘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권의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잊지 못할 장소일 수도 있고요. 그 책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았기 때문에, 그 그림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만났기 때문에, 새로은 것에 눈뜨게 되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라고 말한 것처럼 
이 한권의 책으로 참 많은 생각과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보다 자신있게 하게 된 것 같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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